첫 출근을 했다. 사실 첫 출근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거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리점에서 일을 하면서 기억나는건, 점심때 가끔씩 먹었던 제육볶음이 정말로 맛있었다는 것,
그리고 키 큰 대머리 아저씨에게 정말로 많이 혼났다는 것.
(내가 대체복무를 시작했던 때가 2010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다. 22살 이었구나.. 기분이 이상하다.)
키 큰 아저씨는 송기사님이라고 불렀다.
얼마 전 대리점을 처음 찾아가던 날 미소 지으며 반겨줬던 아저씨는 온데간데 없었다.
농기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대리점 말단 직원으로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뜨문뜨문 배운 연장들을 기사님들이 찾을때마다 빠르게 손에 쥐어드리는 일 뿐이었다.
그것조차도 사실 처음에는 잘 못했다.
복스알, 몽키, 스패너, 플라이어, 바이스플라이어, 드라이버, 스냅링 플라이어.
그놈의 플라이어는 뭔놈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내가 연장조차도 제대로 갖고 오지 못해서 그런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송기사님이 어느순간부터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이 분노의 연속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이 희미하다.
하지만 내가 무슨 행동을 하기만 하면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겁을 줬다. 정확히 기억한다.
저기 가서 핀 빼와라 해서 핀을 빼오면, 왜 핀만 빼왔느냐, 그러다가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담아와야지 하며 화를 내고
그 다음에 다른거 빼와라 할때 담아올 상자를 찾아서 가져가면, 왜 또 그런데다가 쓸데 없이 담아오냐 하고 화를 냈다.
볼트를 조이면 왜 그렇게 세게 조이냐고 핀잔을 주며 화를 냈고, 실수로 볼트라도 부러뜨리는 날이면 공장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기에 그런 수모를 겪는 걸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계를 고치는 기술도 없었고, 연장들 이름조차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말대꾸 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하다. 그냥 대들고 싸우고 말걸, 그걸 어찌 참았는지..
하지만 당시에는 정비기술을 갖고 있던 기사님들이 높은 산처럼 보였고, 대들만한 용기가 없었다.
대략 한달 쯤 지났을까, 또 한번 혼이 나서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손을 쓸 방도도 없이 계속 눈물이 났고, 이렇게 앞으로 2년10개월 동안 저새끼랑 일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복무는 2년10개월 총 34개월 진행)
참 재미있는건 사실 그때까지도 이 대리점에 산업기능요원 TO가 나지 않았는데,
그만 둬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대리점에 TO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