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체복무로 일하게 된 곳은 내가 살던 집 근처의 농기계판매대리점이었다.
가끔씩 친구들과 시내로 향할 때마다 보이던 어마어마하게 큰 대리점 간판이 걸려있던 판매대리점이었다.
'국 제 대 리 점'
1km 밖에서도 보일만한 간판을 내걸고 있던 그 대리점에서 대체복무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들어가던 날이 생각이 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때도 아버지가 나와 함께였다. 대체복무, 농기계자격증 시험, 대리점, 그리고 2종소형 면허장 까지)
그때 당시가 12월 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너무 긴장이 됐다.
밖은 눈이 잔뜩 오고 대리점 앞 마당에도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인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사업장 앞에 와서 바라보니
너무도 이질적이고 낯설었다.
내가 아는 선생님도,친구도 없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곳으로 들어가
'대체복무를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을 해야 하는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바로 사회를 향해 디딘 첫 발걸음이었고,
첫 외침이었다.
대리점 문밖에서 노크를 했고, 영업담당 직원이 나와서 아버지와 나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가 트랙터나 농기계를 사러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들어오라던 그 눈빛과 손짓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친절했던 것 같다.
그 친절함에 긴장이 풀렸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유 모를 용기가 아랫도리부터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괜히 자신감이 붙은 나는 옆에서 아버지가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서 사장으로 보이던 사람에게 말을 꺼냈다.
'이곳에서 대체복무 요원으로 근무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우리를 반겼던 영업담당 직원은 이부장으로 불렸다.
사회에서 직장을 다니다 보니 안 것이지만 부장이라는 직급이 일반 기업에서는 꽤 높은 직급인데,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아 그런가보다 했다.
이부장님은 키가 굉장히 컸고 굉장히 능글 맞았다. 나와 아버지를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반말과 존대를 섞어 가며 아버지에게 농담을 던졌다. 전혀 낯선 기색 없이 사람을 대하는 걸 보고
처음에는 예의가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서글 서글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좋은 사람인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이부장이 우리에게 커피와 음료를 내주는 동안 대리점 사장님이 우리와 마주보며 의자에 앉았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얼굴의 이목구비가 굉장히 뚜렷하고 잘생긴 중년의 남자였다.
막상 대리점 사장님이 마주 보며 앉으니 괜히 주눅이 들었다.
아까 생겨났던 용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나는 음료수만 홀짝 거리며 아버지와 사장님이
이야기 하는것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